인도여행 #3 바라나시에서 선재보트를 타다.

가트를 거닐다

그렇게 선재네 보트 예약을 마치고 우리는 시간이 남아 가트 주변을 돌아다니기로했다. 햇살은 한없이 따사로웠으며 그 햇살아래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즐기는 인도인들은 평화 그 자체였다. 나도 이 평화로움속에 일부가 되고싶어 한 손에 카메라를 덜렁덜렁 거리며 가트 주변을 더더욱 천천히 걸었다. 그때 한 인도인이 나에게 외쳤다.

"보트?" "안녕하세요! 보트?" 오늘도 한 건 올리기 위해 보트맨들은 연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흥정을 하려한다. 나는 대답대신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떼" 그가 빙그레 웃는게 보였다. 나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하면서 다시 말했다. "선재네 보트 방금 예약했어요. 미안하지만 다음에 이용할께요" 그러자 그는 더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노 프라블럼! 선재는 같은 식구니깐 걱정할 것 없어~!" 프랜차이즈인가보다. 그렇게 그들은 연결 또 연결되어있었다. 그렇게 행복해하는 그를 뒤로 한채 나는 좀더 가트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가 사진을 취미로 가진건 대학교때 부터였다. 우연히 아는 형의 DSLR을 만져보고 렌즈에 따라 아웃포커싱 되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멋져보였다. 그렇게 나도 카메라를 구입하고보니 문제가 생겼다. '이제 이 카메라로 무엇을 찍지?' 나는 주변에 사진을 잘찍는다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이 무엇을 찍는지 관찰했다. 꽃을 찍는 사람들, 여자모델을 찍는 사람들, 잘 알려진 촬영포인트를 찍는 사람들 너무도 다양했다. 그들에게 항상 왜 이렇게 찍는지 물어보고 무엇을 찍고 싶은지 물어봤다.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배우면 나의 시선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나도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렇게 사진에 대해 알아가며 다짐했던게 있었다. 바로 인도에가서 꼭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일상과 그들도 모른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담아내고 싶은 것이 오랜 나의 꿈이었다. 지금 나는 인도의 꽃이라 불리우는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서있다. 일분 일초가 아까웠다. 기차로 13시간 이동해야할 거리를 돈을 더들여 비행기로 2시간만에 이동했고, 아프면 사진을 못찍을까봐 물갈이도 피해가려고 양치도 생수를 사다가 했다. 그정도로 나에게 이 순간은 소중했다.

가트중에 메인가트라 불리우는 다샤스와메드 가트(Dashaswamedh Ghat)를 거닐고 있었다. 한 인도인이 갠지스강에 디아(Dia)를 띄우고 있었다. 디아란 작은 촛불에 불을 붙여 갠지스강에 띄우며 소원을 빌 때 사용한다. 보통 저녁에만 하는줄 알았는데 낮에도 몇몇 띄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인도인은 무슨 소원을 빌고 있을까?' 나도 그렇게 옆에 앉아 한참을 떠나가는 디아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보트를 타기로한 약속시간이 다되고 바라나시에서 한번씩 타본다는 보트를 탈 수 있었다. 선재가 배를 몰아갈줄 알았는데 한 인도꼬마가 노를 잡았다. 그리고 선재의 유창한 한국말로 시작된 인도 역사 수업! 그냥 한국사람이었다. 어쩌면 한국사람보다 더 언변이 좋기도했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데 가난한자는 종이를 태워 화장을 시키고 그보다 나은 사람은 나무를 써서 화장을 시킨다고 한다. 실제로 가트 양옆에는 화장터가 2개가 보였고 아직도 시체를 화장중인지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리고 뱀을 신성시하기 때문에 뱀에게 물린자, 어린아이,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는 임산부가 죽으면 갠지스강에 몸에 돌을 묶어 수장시킨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갠지스강이 신이기때문에 신이 거두어간다는 의미에서다. 실제로 보트를 타고 갠지스강을 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떠다디는 시체를 볼 수 있다.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갠지스강에 목욕을 하러 오는 산자, 죽으면 화장을 하는 화장터의 죽은자.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곳. 그런 곳이었다.

보트를 타고 가트 건너편으로 넘어왔는데 가트라는 공간이 한정되있다보니 보트를 타고와 건너편에서도 목욕을 하려는 사람이 주로 온다고 한다. 저렇게 간이 탈의실이 있어서 여성들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 공간도 존재했다. 장마기간에는 이곳이 물에 잠기는데 이때 모든게 다 떠내려간다고 한다.

그렇게 선재에게 인도 신화와 역사수업을 들으며 꼬마뱃사공에게 배를 맡긴채 가트 너머의 석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야 인도에 왔나싶었다.

뿌자 의식을 보다

해가 떨어져도 보트는 멈추지 않았다. 아까 멀리서 봤던 화장터가 눈에 들어왔다. 화장터의 불꽃은 꺼질줄 몰랐다. 화장터에서 여자의 출입은 제한되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신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좋은 일인데 감정조절에 약한 여자들은 울기때문이라한다. 하지만 내가 화장터에서 봤던 사람들은 얼굴은 무심했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마치 화장터가 관광코스인냥 보트를 타고 지나가야만 하는 내가 더 미안했다.

그렇게 선재가 사주는 짜이 한 잔을 마시며 보트에서 보낸 시간은 마무리 되었다. 바라나시에 오는 분이라면 보트는 한번쯤 타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들었다. 짜이 맛은 일품이었다. 솔직히 사진욕심이 커서 물갈이 예방차 짜이를 안사먹고 있었는데, 분위기에 취해 한번 맛을 본 후엔 이미 빈 컵이 되어 있었다.

배에서 내려서 메인 가트쪽으로 갔다. 아니, 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고, 화려함이 나를 이끌었다. 관광객도 있었지만 바라나시라는 곳은 인도 각지에서도 갠지스강에 목욕을하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뿌자는 갠지스강가에서 매일 밤 열리는 힌두교의 제사 의식을 말한다. 신과의 소통하는 자리이므로 매우 경건했고 진실됐다. 나는 좀더 좋은 자리, 가까운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멀리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얼굴에는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나는 이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한 인도인이 내게 말했다. "친구여. 내 자리를 양보할께. 이쪽으로 더 들어와서 찍어. 나는 괜찮아." 나는 잠시 나를 위해 서투를 영어를 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엄청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었는데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못알아듣는줄 알았는지 나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가 앞에 사람에게 힌두어로 뭐라고하자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양보해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에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생각보다 화려하기도 하고 멋진 의식이었다. 의식이 끝나자 하나둘 갠지스강에 디아를 띄우고 돌아갔다. 또 언제 그랬냐는듯 가트주변은 고여해져갔다. 뛰놀던 개도 쉬고, 소도 의식을 마치자 쉬기 시작했다. 조금더 남아 야경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삼각대를 안가져온 것이 너무나 후회됐다. 다음 여행땐 삼각대를 가져와 내가 좋아하는 야경을 찍어봐야겠다.

바라나시 선재네 보트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새벽사진을 찍기로 했던지라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한채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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